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매일경제 글로벌경제부 김유신 기자입니다.
오늘은 요즘 한국 증시를 뒤흔들고 있는 '숨은 변수' 하나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바로 '단일 레버리지 ETF 상품'입니다.
코스피가 하루에만 10% 가까이 급락했다가, 다음날 다시 급등하는 현기증 나는 변동성 장세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단일 종목에 대한 과도한 쏠림, 공포감 등 여러 요인이 이런 변동성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이 변동성의 배경에 '단일 레버리지 ETF'가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레버리지 ETF란?
레버리지 ETF는 기초자산(SK하이닉스)의 등락폭을 2배 추종하도록 설계된 상품을 뜻합니다. 조금 더 쉽게 풀어 설명하면 반도체 주가가 1% 오를 때 2%의 수익을 얻도록 설계된 고위험·고수익 상품입니다.
문제는 이 '2배'를 매일 새로 맞춰야 한다는 점입니다. 주가가 오르면 다음 날에도 정확히 2배 수익률을 내기 위해 기초자산을 추가로 더 사들여야 하고, 반대로 주가가 내리면 손실을 2배로 맞추기 위해 기초자산을 더 팔아야 합니다. 이걸 매일 반복하는 과정이 '리밸런싱'입니다.
몸집이 너무 커진 레버리지 ETF
문제는 이 상품의 몸집이 너무 커졌다는 겁니다. 홍콩 CSOP자산운용이 작년 출시한 SK하이닉스 레버리지 ETF는 9개월 만에 130억달러(약 20조원) 규모로 불어나며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가 됐습니다. 변동성이 큰 날에는 이 ETF와 관련 상품들의 거래가 SK하이닉스 전체 거래량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라고 합니다. ETF 순자산이 SK하이닉스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보다 2배 가까이 큰, 대형주 가운데 가장 극단적인 비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
이처럼 ETF의 영향력이 커지자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원래 ETF는 주가를 따라가도록 설계된 일종의 파생 상품입니다. 그런데 이제 거꾸로, ETF의 리밸런싱 물량이 주가를 움직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매일 오후 특정 시간대가 되면 트레이더들은 ETF의 리밸런싱에 따른 매수·매도 물량을 미리 예측하고 선매매에 나섭니다. 그러면서 이 매수 매도 물량이 주가를 때로는 더 크게 떨어뜨리기도, 혹은 더 크게 상승시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 구조를 지탱하기 위해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20곳이 넘는 대형 은행들이 스와프 계약으로 레버리지를 만들어내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헤지하기 위해 '클리켓(cliquet)'이라는 이색 파생상품까지 동원됩니다. 만기까지 일정 기간마다 기초자산 가격을 측정해 수익률을 초기화하고, 이를 누적해 수익을 지급하는 이색 옵션입니다.
파생상품 비용 눈덩이
몸집이 커진 ETF의 가격을 기초자산과 연동시키는데 어려움이 커지자 관련 파생상품의 비용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 주가 급락에 대비하는 클리켓 비용은 지난 3월 3%에서 최근 10% 이상으로 뛰었다고 합니다. 상품을 유지하는 비용이 계속 불어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은행들은 SK하이닉스 관련 익스포저를 줄이거나 관련 비용을 더 청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용 증가는 수익률의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올해 이 ETF의 수익률은 718%로, 만약 이론상 완벽하게 2배 복리 수익을 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수익률(921%)에 크게 못 미칩니다. 헤지 비용과 운용 부담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입니다.
상승 랠리 끝나면 부메랑 될 수도
전문가들은 만약 이번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종료되면 이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상승장에서 매수를 부르던 리밸런싱 메커니즘이, 하락장에서는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매도를 강제하기 때문입니다. SK하이닉스가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8%에 달하는 만큼(삼성전자 29%), 이 상품에서 시작된 매도 압력이 코스피 선물과 파생상품 시장 전체로 번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2024년 마이크로스트래티지(현 스트래티지) 관련 레버리지 상품들이 겪었던 자금 조달 경색과 손실 사태가 비슷한 선례로 꼽힙니다.
홍콩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올해 5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일 장목 레버리지 ETF 상품이 출디됐습니다. 하지만 최근 변동성이 높아지자 금융당국은 이 상품을 잇달아 승인해준데 대해 유감을 표하며 한발 빼는 분위기입니다. 이들 ETF 투자자의 90% 이상이 개인 투자자라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투자자 시사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 세계 AI 열풍의 최대 수혜주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 주가를 추종하겠다며 만들어진 파생상품이, 이제는 거꾸로 주가와 코스피 지수 전체를 흔드는 변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 증시 덩치가 커지며 글로벌 자금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분명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레버리지 ETF발(發) 변동성이라는 새로운 리스크가 함께 자라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경험이 부족한 투자자의 경우 일확천금을 노린 레버리지 ETF 투자는 멀리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입니다. 하루만에 20%씩 수익을 거두는걸 옆에서 지켜보면 FOMO 현상을 겪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투자는 장기 레이스입니다. 레버리지 ETF는 그만큼 큰 손실을 계좌에 입힐 가능성도 높습니다. 장기 레이스에서 투자자들이 살아남기 어렵게 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100%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염두에 둬야할 건 생존의 확률을 높이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 더 유익한 소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